전세계 냉장고 출하량은 2024년 기준으로 2억 5천만대(가정용+상업용 포함)이고, 시장 규모로는 약 1,300억달러(한화 170억원)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이제는 모든 가정에서 냉장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실제 냉장고의 대중화는 1927년, GE가 <Monitor-Top>이라는 대중형 냉장고가 출시되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산층의 급성장과 함께 월풀(Whirlpool), 프리지데어(Frigidaire)같은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대중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삼성, LG 냉장고 브랜드도 세계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보이면서, 백색가전 시장에서 위상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냉장고라는 것은 차가운 온도를 통해 음식을 오랫동안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대부분 부패균, 식중독균은 5℃ 이상에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냉장 보관은 0~4℃를 유지하면서 세균 번식을 지연시키고, 냉동 보관은 -18℃ 이하로 세균 활동을 정지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물론 식재료에 따라 적절한 보관 온도가 다르긴 하지만, 냉장고 자체는 음식을 신선하게 오랫 동안 보관할 수 있는 전자기기로 사용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냉장고라는 보관장소에도 숨겨진 인간 심리가 있는데요. 간단하게 몇가지 심리적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냉장고는 만족감을 주는 전자제품
사람은 보통 내 것이 되는 순간, 실제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당근마켓과 같은 중고거래를 생각해보면, 파는 사람(물건을 소유한 사람)은 비싼 가격을 제시하고, 사려는 사람(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보다 저렴한 가격을 원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또 다른 예로는 보통 특정 제품을 구매하면, 자신의 일부로 생각하는 애착이 생기기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구매한 제품에 대해서 나쁜 평가를 하면, 기분이 나뻐지는 현상도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책, 열지 않은 화장품, 입지 않은 등 사용은 커녕 존재조차 잊었던 제품들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뭔가 이룬 것 같은 만족감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할인마트의 등장과 함께 더 큰 저장공간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즉 대형 할인마트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대량 구매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이는 가정에서의 식품 보관 공간 확대 필요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점차 냉장고가 클수록 더 많은 식량을 보관할 수 있어 생존 불안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이렇게 냉장고는 만족감을 주는 제품입니다. 대형할인마트에서 카트를 밀며 느끼는 뿌듯함은 사실 소비의 기쁨이 아니라, 소유의 안정감에서 비롯된 감정입니다. 그렇게 장을 본 순간 우리는 이미 만족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냉장고는 소비보다는 소유의 만족감을 담는 심리적 매커니즘이 작동하는 제품이라는 점입니다. 즉 냉장고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를 만드는 것입니다.
냉장고는 일종의 계획표
장을 볼 때마다, 대부분은 필요한 식재료를 구매하면서 계획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음식들을 준비할지 계획하며, 장을 보게 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계획일뿐, 현실은 그렇게 보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일종의 계획오류(Planning Fallacy)라는 심리적 특성이 반영되는 현상인데요. 이번주 먹을 음식을 구입해서, 냉장고에 보관해 두지만, 현실은 배달음식을 먹는 현실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계획오류는 결과에 대해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경향으로 기인하는 것으로 장을 보면서, 구입한 식재료는 대부분 자신의 계획대로 가족들이 먹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냉장고의 크기가 클수록, 과잉구매가 더 많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정도는 충분히 요리해서 먹겠지라는 생각과 낙관적 계획이 자주 일어나게 되곤 합니다.
냉장고는 낙관적인 계획들을 축적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언젠가 요리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가능성, 혹시 모르니 사두자라는 불안 회피가 작동하면서 언제나 실패한 계획을 담게 되는 전자제품인 것입니다.
냉장고는 버려도 되는 식재료 보관소
냉장고에 채운 심리 중에서 식재료라는 특징에서 오는 심리도 있습니다. 식재료는 고가의 제품들이 아니기 때문에 버려도 괜찮은 물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싼 전자제품이나 의류 등은 안쓰면 일종의 죄책감을 갖는 심리가 발생하지만, 예를 들어 시든 상추는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과 함께 쉽게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이는 가격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먹겠지라는 막연한 계획으로 실제 먹지 않을 수 있는 식재료를 카트에 담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냉장고는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먹지도 못할 식재료를 가득 채움으로서, 환경을 파괴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냉장고는 잘 살고 있다는 증표
마지작으로 냉장고에 식재료를 채우는 행위는 자신이 살림을 잘 하고 있으며, 가족을 잘 챙기고 있다는 자기 확증(self-affirmation)이 작동되고 있기도 합니다. 냉장고를 채운다는 것은 나는 준비된 사람이라는 심리적 안정감과 자기 효능감이 작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불확실한 일상 속에서 내가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도구라고 볼 수 있는데요. 냉장고는 그 자체로 체면을 지키는 가전이고,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는 상징적 이미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냉장고의 내용물을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채워진 칸들을 통해 자신을 위로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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