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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할 기업&브랜드

애플 사원번호 1번: 애플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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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10프로 할인 받는 법(출처: @issue_archive)

 

최근에 국내에서 애플 10% 할인받는 방법이라는 숏츠 영상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스티브 오(Steve-O)라는 미국 배우이자 유튜버가 애플 매장에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Gary Woz Wozniak)가 같이 방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애플 매장 직원은 워즈니악에서 사원번호를 보여달라고 하게 되는데요. 멋쩍은 표정의 워즈니악은 당당하게 애플 매장 직원에서 자신의 사원번호 1번이 적힌 사원증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렇게 스티브 오는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 매장에 방문을 해서, 지인할인으로 맥북 10%를 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스티브오는 예전의 짐캐리 같은 엉뚱하고 유쾌한 일들을 하는 코메디언 같은 분인거 같긴 합니다. 찾아보니 이 영상은 4년전에 자신의 채널에 소개된 컨텐츠로 최근 국내 유튜브, 커뮤니티를 통해 다시 소개가 되면서 잠깐이나마 인기를 얻은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워즈니악 없는 잡스, 워즈니악 없는 애플이라는 이야기가 있을만큼 얼굴 마당이 아닌, 실질적인 애플의 초기 기반을 만들어낸 워즈니악이라는 창업자에게 겨우 애플의 창업자에게 겨우 10% 할인을 보면, 애플은 애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알아보니 직원 할인은 온라인의 경우, 본인 구매시 25%까지 받을 수 있으며, 지인 할인은 10%라고 하네요.

 

 

 



여전히 애플 직원인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

워즈니악은 여전히 애플 직원이라고 하는데요. 과거 스티브 잡스와 다툼 등으로 인해, 애플을 그만 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퇴직 처리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애플 내 소속은 CEO 자문역을 하고 있으며, 연봉 12만달러로 기술직 2년차 수준의 연봉을 아직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애플 사원번호 1번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기도 하겠네요. 사원번호 2번은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워즈니악보다 앞선 번호를 가질려고 하다가 0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잡스는 애플 사원번호 2번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기획, 영업 같은 일을 했다면, 실제로 초기 애플의 제품 개발에는 워즈니악이 있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애플에서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창업자이긴 합니다. 워즈니악은 Apple I와 Apple II와 같은 초기 컴퓨터 제품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를 최초로 성공하게 이끈 주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Apple I와 Apple II 개발 과정에서 베이직(BASIC)이라는 프로그램 언어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다툼, 소송 등 창업 초기와는 다르게 거리가 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잡스가 죽기 전에 워즈니악에게 전화를 해서 애플로 돌아올 것을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마지막에 화해를 하며, 감정을 풀지 않았을까 싶네요. 

 

 

넥슨컴퓨터박물관, 나무 케이스에 Apple I 전기

 



개인용 컴퓨터의 꿈: 워즈니악의 꿈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창업하기 전에 해커로 유명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는 5살 나이가 많긴 했지만, 초기에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재능이 있다는 점을 알아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HP에서 근무하던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고 싶었지만, 당시 HP는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개인용 컴퓨터라는 개념이 없었기도 하고, 기업용 컴퓨터에 주력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쉽게 HP에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여름 방학 HP에서 일을 하게 된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게 되고, 둘은 홈브루(Homebrew) 컴퓨터 클럽이라는 동호회를 통해  더욱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결국 HP에 근무를 하던 위즈니악은 1976년 잡스와 함께 Apple I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요.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것에 잡스에 비해, 워즈니악은 순수한 엔지니어로서 개인용 컴퓨터라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Apple I는 나무 케이스로 인해, 대량생산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찾는 사람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입소문이 나게 되었고, 10개월 동안 약 200여대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7년 Apple II는 이전 세대보다 프로세서의 성능을 높이고, 컬러 모니터 출력 기능을 갖췄고, 이밖에 여러 확장 슬롯으로 메모리 용량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Apple I이 나무 케이스를 수공으로 깍아 만들었다면, Apple II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적용하고, 1993년까지 누적판매 500만대를 기록하며 애플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1981년 워즈니악은 경비행기 추락사고 인해, 얼굴과 머리를 크게 다치고 5주 동안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회복 후 대학에서 남은 학업을 마치고 다시 애플에 돌아오게 되지만, 예전 같지 않은 애플에 실망하며 1985년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이것이 공식적인 워즈니악의 애플의 근무기간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떠난 1985년부터 퇴직 처리가 되지 않고, 여전히 애플의 직원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애플에게 공동창업자였던 워즈니악의 공로가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순수한 공돌이, 순수한 개발자

워즈니악은 사실 잡스와는 전혀 다른 성향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사업가의 마인드를 가진 잡스라면, 순수한 공학도,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은 착한 해커이기도 했으며, 오픈소스를 추구하는 개발자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기꺼이 사용하는 해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시절 AT&T사의 장거리 통화 네트워킹을 해킹해서 부당한 전화세 부과를 피할 수 있도록 폰 프리킹 및 무료 장거리 전화인 블루박스를 만든 것이 유명한 일화이긴 합니다. 또한 초등교육에 대한 관심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네요. 워즈U라는 교육 플랫폼을 설립하기도 하고, 모교에 기부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986년부터 고등학생, 대학생들에게 워지상(Wozzie Award)을 수여하면서 컴퓨터를 사용을 장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워즈니악의 영향력을 받아서인지 애플에서 항상 교육용 판매 페이지를 별도로 만들고, 할인을 제공하면서 애플 제품이 교육용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하는 부분은 1번 사원, 워즈니악 때문이기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리고 IT업계의 기술발전이 프라이버시, 자유언론, 디지털 권한 등에 대한 문제에 옹호하고 정부 규제책을 비판하는 전자프론티어재단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상당금액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애플에 쓴소리를 하는 유일한 직원

국내에도 벤처투자자들 가운데, 국내 IT기업의 창업 멤버들이 있곤 합니다. 스타트업을 통해 벌어들인 자산을 가지고, 새로운 스타업트 육성을 위한 노력을 하는 분들이 있곤 하는데요. 워즈니악 역시도 이러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2009년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olid State Drive)를 주력을 하고 있는 퓨전 아이오(Fusion-io)라는 회사에 합류에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어퀴코테크놀로지라는 지주사를 통해 유망IT기업을 인수하는 일도 했다고 알려져 있네요. 애플의 직원으로 유지를 하고 있지만, 아이폰에 쓴 소리를 하기도 하고, 애플에게 구글과 협력하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기도 하면서 현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천재 엔지니어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워즈니악 재산에 대해서는 알려진 부분이 많지 않긴 하지만, 애플 주식만으로도 충분히 놀고 먹을 정도의 재산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예산됩니다. 도요타 프리우스만 6대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가의 전기차 루시드에어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주택이 100억정도라고 하는 소문도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여타의 IT업계 창업자에 비해서 많지는 않지만, 행복하고 여유있는 생활을 할만큼의 충분한 재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의 목표는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이 아니였다
단지 좋은 컴퓨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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