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없이 착용하고 어디에나 무난한 것이 애플워치라고 할 수 있겠지만, 럭셔리 시계 브랜드에 관심이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을 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일럿, 다이버가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럭셔리 시계의 라인으로 자주 소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외 서킷, 요트와 같은 스포츠를 모티브로 라인업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요. 왜 이러한 스포츠를 모티브로 시계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정리해보겠습니다.

파일럿 워치: 비행을 위해 필요한 시계
1900년대 초에 비행기에는 GPS, 레이더와 같은 기능이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파일럿은 속도, 항로, 연료 잔량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손목 시계가 필수였습니다.
예를 들어 시속 100km인 비행기가 30분 비행을 했다면, 50km를 이동한 것입니다. 30분이라는 시간 계산이 틀리면, 비행기의 항로, 위치, 남은 연료 등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파일럿에게 시계는 그만큼 생존을 위한 중요한 장비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파일럿 워치의 시작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닌, 실제 필요에서 비롯됐습니다. 1906년, 비행기 실험에 몰두하던 루이 브레게(Louis Breguet)는 비행 시간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항공용 시계를 직접 설계합니다. 루이 브레게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 브레게의 창립자는 아니지만, 창립자 아브라앙-루이 브레게 (Abraham-Louis Breguet)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로 항공기 발명가였으며, 직접 시계 설계를 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브레게 시계 브랜드와 루이 브레게의 항공용 시계는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1911년, 하늘을 날던 비행기 발명가가 산토스 뒤몽(Santos-Dumont)은 당시 까르띠에에게 시간을 손목에서 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손목용 파일럿 워치 산토스입니다. 당시에는 포켓 시계가 많다보니, 비행 중에 시계를 꺼내서 보내는 것이 매우 불편했고, 이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한 산토스 뒤몽의 의견에 따라 까르띠에는 세계 최초의 손목용 파일럿 워치를 선보이게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까지 시계를 생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산토스는 패션 스타일의 시계로 인기를 여전히 모으고 있지만, 역사를 살펴보면 최초의 파일럿 시계라는 점이 흥미롭네요.
이후 파일럿 워치는 세계1차, 2차 대전을 거치며, 발전하게 됩니다. 빠르게 읽히는 큼직한 숫자 인덱스, 야간 비행을 위한 야광 도료, 전자기 간섭을 막는 항자성 구조, 그리고 비행 중 즉시 시간을 재측정할 수 있는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기능 등이 지금도 파일럿 워치의 주요 특징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세계 1차, 2차 대전이 일어나던 시기에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브랜드는 론진(Longines)으로 정밀 항법용 시계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IWC는 마크XI모델을 영국 공군에 납품을 했고, 브레게(Breguet)는 Type XX를 프랑스 해군 항공대에 납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렇게 파일럿 워치를 개발한 국가가 바로 영구 중립국인 스위스라는 점입니다. 이외에도 독일 공군에 납품한 독일 시계 브랜드 랑에 운트 죄네(A. Lange & Söhne) 등도 있습니다. 이후 많은 시계 브랜드들에게 파일럿 워치는 하나의 개발 모티브가 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네요.

다이버 워치: 바다를 품은 시계
1945년 세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전쟁의 과정에서 해군 특수부대 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1950년에는 스킨 스쿠버 장비들이 등장을 하면서 민간인들의 바다 탐사가 가능해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단순한 방수를 넘어 수압, 염분, 충격 등 극한의 환경을 버티는 시계가 필요해졌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시계 브랜드가 블랑팡(Blancpain)의 피프티 패덤즈, 그리고 뒤이어 롤렉스(Rolex) 서브마리너였습니다. 뒤를 이어 오메가(Omega) 씨마스터 역시 영화 <007> 속 제임스 본드의 시계로 등장하면서, 다이버 워치로서 인지도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물론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가 등장하기 이전 방수 시계의 개념이 먼저 개발되었습니다. 1926년, 롤렉스는 세계 최초의 방수 손목시계 오이스터(Oyster)를 출시했습니다. 조개껍질처럼 단단히 닫히는 구조 덕분에 수영 중에도 시간 정확도를 유지했고, 실제로 영국 수영선수 메르세데스 글라이츠가 도버 해협을 횡단하며 이 시계를 착용해 실용성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932년 오메가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간 모델 마린(Marine)을 선보였는데요. 이중 케이스 구조로 135m 수심 실험에 성공하며, 상업용 방수 시계의 정점이라 불릴 만큼 진보된 기술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개념은 방수 시계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다이버 위치와는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되겠는데요. 최초의 다이버 위치는 원형은 1953년 블랑팡(Blancpain)에서 선보인 시계입니다.
블랑팡(Blancpain)의 피프티 패덤즈(Fifty Fathoms)은 91미터 수심을 의미합니다. 패덤(fathom)은 당시 수심을 나타내던 표기 방식으로 1 패덤은 약 1.828미터입니다. 그래서 블랑팡 피프티 패덤즈는 91미터 수심을 의미하는데요. 피프티 패덤즈는 기능적 완성도가 전혀 달랐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잠수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회전 베젤, 깊은 물속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야광 도료, 약 100m에 달하는 방수 성능, 그리고 해군 장비 간섭을 방지하는 자기장 차폐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다이버 워치라 부르며 당연하게 여기는 거의 모든 기능이 이 시계에서 처음 구현되었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은, 이 시계는 단순 상업용이 아니라, 프랑스 해군 특수부대의 요청으로 개발됐다는 점으로, 이후 미국 해군 SEAL팀과 나토(NATO) 소속 다이버들에게도 채택되며, 블랑팡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초 다이버 워치라는 타이틀을 가지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블랑팡은 1973년 스위스에서 탄생한 가장 오래된 시계 브랜드라는 헤리티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별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1953년 같은해, 롤렉스는 서브마리너(Submariner)라는 모델을 선보입니다. 물론 롤렉스는 방수 케이스(오이스터), 자동 무브먼트(퍼페츄얼) 기술 등을 통해 이미 충분한 명성을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브마리너를 통해 좀 더 대중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100m 방수 성능과 잠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회전 베젤을 선보이면서, 럭셔리 다이버 워치를 알리게 되었는데요. 특히 당시 <007> 영화를 통해 제임스 본드 숀 코넬리가 착용을 하면서 더욱 롤렉스의 브랜드 인지도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메가(Omega) 씨마스터는 위에 언급한 블랑팡, 롤렉스보다 1948년에 처음 출시되었지만, 초창기 모델은 드레스 시계에 방수 기능을 더한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957년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로서 씨마스터 300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인 다이버 워치 라인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파일럿 위치와 다이버 워치: 생존의 도구(Tool)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의 라인업을 보면, 공통적으로 파일럿 워치나 다이버 워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라는 제품이 어떤 의미로 발전했는가를 보여주는 역사성을 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데요. 비행사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 시계의 역할이 필요했으면, 2차 세계대전 이후 해군 특수 부대 등의 군사 작전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다이버 위치가 개발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즉 파일럿 위치와 다이버 위치는 기능성이 있는 하나의 도구로 필요로 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시계가 패션의 영역에 있었지만, 당시에는 군사용으로 필요로 했던 도구였던 것입니다. 파일럿 위치와 다이버 위치는 시계가 어떻게 발전을 해 왔는지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일종의 헤리티지라는 점에서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담긴 스토리를 브랜드에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후 태그호이어의 카레라나 모나코는 F1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 롤렉스의 요트마스터나 파네라이 루미노르 레가타 등도 요트 레이싱을 모티브로 하지만 실제 선수가 착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폰서 등 마케팅적인 활용에 머물러 있습니다.
시계의 용도에 있어서, 최근에는 기능적인 측면이 무의미해졌습니다. 물론 스마트워치가 등장하면서, 아웃도어를 위한 시계로서 기능들을 보여주거나, 향후 당측정까지 하는 헬스 디바이스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기도 합니다. 스마트워치가 등장을 하면, 전세계 시계 시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럭셔리 시계 시장은 존재하고 있으며 시계덕후들까지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이제 시계는 더 이상 시간을 알기 위한 도구는 아닙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가 시간을 넘치도록 알려주는 지금, 우리가 굳이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들여 기계식 시계를 차는 이유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기억>하고 <존중>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럭셔리 시계의 소비는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겠지만, 남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하는 욕구일수도 있겠네요.
주어진 시간은 같지만,
각자가 쓰는 시간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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